마스터 디스틸러 블로그 제5호 ― 킬닝의 풍미 곡선
David Hsieh

낮은 온도로 시작해 단계별로 올라가는 한 시간 단위의 곡선, 그리고 맥주와 위스키가 같은 보리를 두고도 끝내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
David Hsieh, 마스터 디스틸러, Tankyu Distillery |「Business Whisky Guide」 팟캐스트 진행자
본 글은 《업무용 위스키 가이드》 팟캐스트 EP5 〈피트와 발맥(하)〉(2023년 3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녹음) 을 재구성한 것이다.
왜 곧장 발아를 멈춰야 하는가
침지를 마치고 4일에서 5일에 걸친 발아 과정을 거친 뒤, 증류소나 발맥장은 왜 그렇게 서둘러 보리의 발아를 중단시키려 하는가.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전분을 지키기 위해서다. 맥아가 그대로 발아를 이어가면, 보리 알갱이 안의 전분(澱粉)은 발아 자체의 대사 활동에 의해 점점 소비된다. 증류소의 입장에서 전분은 최종적으로 한 병의 위스키가 되어 시장에 나가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보존해야 한다.
둘째, 효소(酵素)를 '휴면' 상태로 묶어두기 위해서다. 발맥 과정에서 깨워낸 효소(Enzymes)를 그대로 두면 효소 또한 전분과 함께 소비된다. 적정선에서 효소가 충분히 활성화되었을 때 그 활동을 한 번 멈춰 세워야 한다.
셋째, 미생물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발맥은 본질적으로 고습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시간이 길어지면 잡균이 자리잡아 맥아의 감염이나 부패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증류소는 효소의 생성이 가장 좋은 비율에 도달하면서도 전분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는 그 한 순간에, 맥아의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일시정지 방법은 맥아를 건조시켜 함수율을 낮추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방식은 그저 햇볕에 펴 말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조량이 적고 비가 잦은 스코틀랜드에서 이 방법은 현실에 맞지 않았다. 햇볕만으로는 미처 마르기 전에 보리는 다시 발아를 이어가고, 그러는 동안 전분은 소진된다.
'킬닝 가마(Kiln)'와 파고다 지붕의 유래
그래서 현지의 발맥장들은 킬닝 가마(Kiln)라는 방식을 진화시켰다. 숯불 피자 화덕을 닮은 가마 위층에 맥아를 펴고, 아래층에서 피트나 숯에 불을 붙여 열기를 올려보내 맥아를 건조시키는 구조다. 약 2시간 간격으로 한 번씩 뒤집어주며, 정해진 수준까지 함수율이 떨어지면 작업을 마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마의 구조 자체도 개량되었다. 가마의 천장이 높아지고, 가장 높은 곳에 뾰족탑 모양의 굴뚝이 추가되어, 실내외의 온도차로 상승 기류를 만들어 건조 효율이 크게 좋아졌다. 이 뾰족탑 형태의 지붕이 바로 파고다 지붕(Pagoda Roof)이라 불리는 구조이며, 이후 스코틀랜드 위스키 증류소의 가장 상징적인 외관 요소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새로 짓는 증류소들은 대개 자가 발맥을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외관에는 파고다 지붕을 모방해 '이곳은 위스키 증류소다'라는 시각적 신호로 삼는다. 대만의 카발란 증류소(Kavalan) 건물 위에서도 이 요소를 볼 수 있다.
현대의 'Single Floor Kiln'
현대 상업 발맥장이 쓰는 설비는 싱글 플로어 킬른(Single Floor Kiln)이라 부른다. 전통적인 '더블 플로어(Double Floor)' 구조와 달리, 현대 설계는 단일 층에 건조를 집중시킨다. 열풍을 맥아 침대(malt bed) 아래로 보내고, 기계식 팔(arm)이 맥아를 뒤집어준다. 맥아 침대의 두께는 70에서 90센티미터까지 쌓아 올릴 수 있고, 1제곱미터당 한 번에 약 500킬로그램의 맥아를 건조시킬 수 있다. 전체 건조 시간은 12시간에서 48시간으로 압축된다. 사용 효율도 높고 시간도 과거에 비해 크게 단축되었다.
'자유 건조'와 'Falling Rate' — 킬닝의 두 단계 곡선
킬닝은 분명히 구별되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단계는 자유 건조 단계(Free Drying Phase)로, 온도는 50°C에서 70°C 사이로 설정된다. 건조 초기의 맥아는 함수율이 높고, 내부 효소가 아직 불안정해서 언제든 고온으로 활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이 단계는 의도적으로 낮은 온도를 유지하며, 맥아 함수율을 약 40%에서 12% 정도까지 천천히 끌어내린다.
함수율이 12%까지 내려가면 맥아의 겉껍질은 대체로 말랐지만, 내부의 전분 구조 안에는 아직도 상당한 수분이 끼어 있다. 이 부분의 수분을 빼내는 데는 더 높은 온도와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시점부터는 맥아가 상대적으로 건조한 상태라 효소가 활성을 잃을 위험이 줄어들기에, 건조 온도를 75°C에서 80°C로 끌어올려 두 번째 단계인 'Falling Rate' 단계에 진입한다. 이 단계에서는 송풍 강도를 낮추고, '순환 송풍' 방식으로 한 번 내보낸 열풍을 회수해 재사용함으로써 추가 가열 비용을 절감한다. 맥아의 함수율은 이 단계를 거쳐 12%에서 4%~4.5%까지 더 내려간다.
여기까지 보면 위스키 맥아 킬닝의 전체 리듬이 한눈에 보인다. 저온으로 시작 → 점진적인 승온 → 목표는 효소 보존과 함수율 감소.
맥주 맥아와 위스키 맥아가 갈라지는 한 단계
그런데 같은 킬닝 공정이 맥주 맥아를 만들 때는 한 단계가 더 붙는다. 고정 단계(Curing)라 불리는 단계다. 이때 킬닝 온도는 85°C에서 100°C까지 더 올라가며, 그 목적은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을 촉진하는 것이다. 고온 처리를 거친 이 맥아는 깊은 탄화 풍미와 초콜릿 같은 톤을 발달시키는데, 우리가 흔히 듣는 초콜릿 몰트(Chocolate Malt)가 바로 이 산물이다.
위스키 맥아 킬닝에서는 왜 이 단계를 거의 거치지 않는가.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고온은 맥아 내부의 효소를 활성 잃게 만들어버린다. 증류소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효소를 보존하는 일이지, 맥아 자체가 가진 과도한 로스팅 풍미가 아니다. 가령 킬닝 단계에서 짙은 로스팅 풍미의 맥아를 만든다 하더라도, 그 이후 당화·발효·증류를 거치고 다시 캐스크에서 오랜 숙성을 마치고 나면, 원료 단계의 풍미가 잔에까지 그대로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풍미 맥아'의 실험들
다만 최근에는 일부 증류소가 '풍미 맥아'를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글렌모렌지(Glenmorangie) 증류소의 시그넷(Signet) 라인이 한 예다. 이 라인의 배합 가운데 일부는 로스팅 정도가 높은 초콜릿 몰트를 사용해, 최종 위스키에 약간의 커피와 초콜릿 톤을 입힌다.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증류소(Holyrood Distillery)는 실험성으로 잘 알려진 소형 증류소인데, 깊게 로스팅한 초콜릿 몰트를 비롯해 다양한 풍미 맥아를 계속 시험해보고 있다. 이런 시도가 위스키 업계의 주류는 아니지만, 그 영토는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린 몰트'라는 길
마지막으로, 증류소의 생산 일정만 잘 맞춘다면 킬닝을 아예 건너뛰고 건조되지 않은 맥아 — 즉 그린 몰트(Green Malt) — 를 그대로 위스키 제조에 쓸 수 있을까? 답은 '가능하다'이다. 생맥아의 효소 활성은 가장 높으며, 당화 단계에서 더 많은 당을 끌어낼 수도 있다. 다만 건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맥장에서 증류소로 운송되는 도중에도 발아가 계속되고, 장기 보관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코틀랜드의 증류소 대부분은 위치가 외져서 물류 시간이 길어지면 맥아의 상태를 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린 몰트는 발맥장과 거리가 매우 가까운 특정 증류소나, 애초에 자체 발맥장을 같이 운영하는 대형 그레인 위스키 증류소에 더 적합하다.
한 알의 보리가 잠에서 깨고, 다시 잠재워지고, 그 한 시간 한 시간의 온도 곡선이 모여 한 잔의 위스키가 된다. 오늘 밤은 그 곡선을 한 번쯤 떠올리며, 위스키 한 잔을 천천히 기울여보고 싶다. Slàinte mhath!
저자 약력
데이비드 셰(David Hsieh)는 단큐 증류소(Tankyu Distillery, 丹丘蒸留所)의 수석 증류사다. 이전에는 스코틀랜드의 여러 위스키 증류소에서 증류사로 일했으며, 헤리엇와트 대학교(Heriot-Watt University)에서 양조·증류학 석사(MSc Brewing and Distilling)를 취득했다. 대만 1위 위스키 팟캐스트 《업무용 위스키 가이드》의 진행자이자 제작자다.
단큐 증류소에 대하여
단큐 증류소(丹丘蒸留所)는 홋카이도 가미카와군 히가시카와초에 자리한, 일본에서도 드문 공설민영(公設民営) 크래프트 증류소다. 2020년에 설립되어 다이세쓰잔의 맑은 용천수로 싱글 몰트 위스키와 크래프트 진을 만든다. 히가시카와초는 홋카이도에서 유일하게 상수도가 없는 지자체로, 그만큼 물이 맑다. 자세한 내용은 tankyudistillery.jp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자료
《업무용 위스키 가이드》 팟캐스트 EP5 〈피트와 발맥(하)〉, 2023년 3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녹음.
본 글에 언급된 다른 증류소, 브랜드, 사업자에 관한 정보는 공개 정보와 저자의 개인적 견문을 정리한 것이며, 정보 및 지식 공유를 목적으로 한다. 상업적 비교나 평가가 아니며, 단큐 증류소(丹丘蒸留所)의 공식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